공지사항

다음학교의 새로운 소식입니다.

작성일 : 2023-08-31 조회 : 312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광성: 정광성이고 21살이고 다음학교 온 지는 6년 째가 됐고 이제는 졸업해서 또다른 도전을 하게 된 상태입니다.

나희: 너무 기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이렇게 멋진 아들을 둔 김나희라고 합니다.  

 

오늘 유일하게 졸업한 다음학교 12기 첫 졸업생이자 졸업생의 학부모이신데 소감을 전한다면 

광성: 아직 실감이 잘 안 나긴 하는데 만감이 교차하면서 아쉽기도 해요. 이제 이곳을 떠나서 잘할 수 있을지 싶기도 하지만 또 다른 스텝으로 도약하는 거니까 기쁘기도 합니다.

나희: 다음학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쭉 돌이켜보니까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어요. 처음 왔을 때는 아이가 굉장히 눌려있던 상태였어요. 자신감도 잃고 억압되어 있던 상태로 이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그런 14살밖에 안 된 아들을 맡기고 (생업을 위해) 내려갈 때 그 심정이 그야말로 마음이 복잡했죠. 공부보다 우선한 것이 상처투성이인 아이의 마음을 학교가 어떻게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였어요. 아이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고 상처가 치유되고 그런 것을 제일 기대했던 것 같아요. 공부에 대해서는 그렇게 키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 마음에 그늘이 없이 그렇게 성장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집 가정이나 들여다 보면 심적인 어려움을 다 겪지만, 북한에서 아들이 걸어온 길은 정말 험난한 길이었어요.

 

 

다음학교는 분위기가 정말 달라요.

저는 학부모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학생이 된다면 이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싶어요."

 

처음 학교 왔을 때 기억이 나는지

 

광성: 오늘 졸업식에서 교감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키 작고 마른 까무잡잡한 데다 극도로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굉장히 긴장했던 것 같아요. 커뮤니티 모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주목을 하니까 너무 무서웠어요. 저희 어머니가 이야기하신 것처럼 누가 선생님인지 학생인지 모르기도 했어요. 친하게 잘 지내는 모습이라 긴장했지만 며칠 뒤에 다 없어졌던 것 같아요. 다들 잘 해주셔서.

 

나희: 광성이가 정말 사회성이 없었어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얘기한다던가 이런 걸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처음 왔을 때 다른 아이들이 영어로 발표하는 걸 보고 다른 세계 같았어요. 그때 우리 아들도 언젠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북한에서 엄마랑 헤어진 기간 동안 다 자포자기한 상태였어요. 공부를 다 내려놓은 상태로 하나원에 왔을 때 중학교 2학년 때인데 초등학교 3-4학년 수준이라는 거예요. 저는 알잖아요. 제 아들의 수준을. 3개월 지나면 선생님들이 놀라실 거라고 제가 장담했는데 3개월 지났을 때 선생님들이 "그때 얘기하셨던 게 무슨 말씀인지 몰랐는데 이제 제가 그 말씀을 이해했어요. 광성이가 잘할 겁니다."하면서 희망을 주더라고요. 저는 아들을 아니까 아들을 믿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라고 해도 빠른 시간 안에 올라갈 것이라고요. 저는 걱정된 게 아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서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게 걱정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아들이 많이 성숙했어요. 학교가 내가 못 해 준 것, 사랑 주고 정 주고, 한 걸음 한 걸음 잡아줘서 오늘까지 이르렀구나. 제가 선생님들께도 말씀드리는 게 다음학교를 너무 너무 사랑하거든요.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 다른 학교에 비해서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점이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선생님하고 학생 사이가 아니고 친누나 형 사이처럼 자발적으로 유도해 주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케어해주더라고요. 다음학교에 오기 전 1년 동안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이 학교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더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아들이 이렇게 성숙할 수 있었던 건 다음학교라는 학교가 있어서인 것 같아요. 학교가 없었다면 이런 성장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고 봐요. 

 

 

나희: 다음학교는 분위기가 정말 달라요. 저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학생이 된다면 이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싶어요. 제가 학부모지만 친근하고 가족 같은 공동체의 분위기에서 내가 생각한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따분하게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들이(다양한 활동)도 가는 것을 보니 제가 학생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아들한테 “넌 참 복도 많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해요.

 

 


유학의 꿈이 실현되기까지 많았던 의문부호를 넘어

 

나희: 처음은 유학에 대해 꿈도 못 꿨어요. 왜냐하면 북한에서 탈북해서 이 낯선 한국 문화에 적응하면서 살았는데 미국이라는 땅에 가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되고, 그때만 해도 광성이 영어 실력이 그냥 일반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유학’은 많은 장벽이 있잖아요. 그래서 과연 그걸 넘어서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호가 많았어요. 저는 참 놀라운 게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걱정하고 근심하고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광성이가 정말 모든 장벽을 넘었더라고요.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성: 처음 유학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교감 선생님이 주한 미 대사관과 연결된 에듀케이션 USA*의 유학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들으시고 미국에 가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참가를 하겠냐고 물어보셨을 때에요. 이틀 내내 고민하며 조언을 구하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추구하는 삶이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거라서 한국에서 대학을 진학하는 뻔한 길을 선택하면 언젠가는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어서 결정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는 백 퍼센트 유학을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은 못했어요. 갑작스럽게 정한 것이기도 하고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다 보니 포기한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포기했을 때는 경제적인 뒷받침이나 확실한 동기가 없었다고 할까요.

 

북한에 있을 때는 중국인을 포함해서 외국인을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우물 안 개구리였어요. 외국이라는 나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는데 탈북하면서 베트남, 라오스, 태국을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한국에 오기까지 점점 더 발전된 문화를 경험했어요. 더 넓은 세상에 가면 내 시야도 넓어지겠구나 생각하다 보니 점점 동기가 선명해진 것 같습니다.

*에듀케이션USA는 175개 이상의 국가·지역에 있는 유학생 상담센터 430여곳으로 구성된 미 국무부 네트워크로 미국 유학에 대한 정확하고 포괄적인 정보를 제공.

 

도전과 성장의 DNA가 같은 모자


나희: 지금 보니까 우리 아들이 저랑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심적으로 부담될까 봐 얘기한 적은 없는데 제가 아들을 미국에 보내자고 생각한 이유는 경제적인 힘도 없고 상황도 영어 실력도 충분하지 못했지만 성장하려면 내 능력보다 더 아득히 먼 곳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 지향점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꿈이고 도전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죠. 나라는 사람의 능력에 맞는 ‘미래’를 계산하고 설계하면 그게 한계가 있잖아요. 내가 움직일 만한 환경의 테두리로 구현하면 구획을 넓히지 못하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는 한계를 두지 말고 넓은 세계로 가서 더 많은 도전을 하면서 더 많이 부딪혀 보는 것, 나라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잠재력과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는 경험을 바랐는데 본인이 알아서 판단했네요. 우리는 성향이 비슷해서 뭐든 자기 힘으로 해내려는 독립심이 강해요. 

 

어떤 선생님들은 자식을 먼 데다 두고 어떻게 하냐고 지금이라도 막으라고 하는데 부모가 무슨 권리로 자식의 앞길을 막는지. 보고 싶은 건 요즘 시대가 좋아서 휴대폰으로도 보고 그렇게 견디면 될 것 같아요. 사자는 자식을 벼랑 끝으로 굴린다고 했는데 이렇게 알아서 커 주니까 너무 좋아요.

 

제 꿈은 고통 받는 북한의 가족과 주민들을 위해 따스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거예요."


건축가로서의 꿈


광성: 어릴 때 크레용으로 엄마와 미래에 이런 집에 살자고 하면서 이층집을 그리며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탈북하기 전에 국경도시에 딱 한 번 와봤는데 처음 저 너머에 보이는 외국이라는 걸 보니까 극과 극이고, 그 차이가 10미터 밖에 안 되는데 10년이 넘는 차이였고 모든 게 문화충격이었어요. 전기가 안 꺼진다는 게 신기했고, 가로등이 계속 켜져 있는 게 신기했어요.

 

저도 아직 가족들이 북한에 있고 거기 제가 아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나중에 건축가로서 집을 지어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었어요. 열다섯 살에 한국에 오게 되었고, 한국이라는 낯선 사회에 적응하느라 꿈을 상상할 겨를조차 없다보니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러다 제가 점점 성장하고 정체성이 확고해지면서 저의 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제 능력치 같은 걸 고려했을 때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다 연결되는 학문이 건축(심리, 그림, 엔지니어링)이었어요. CAD 학원도 다녔는데 너무 재밌었고 편집도 해봤는데 재밌어서 건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최근에 이런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딱 확고하게 목표와 꿈으로 자리 잡은 거 같아요. 그래서 제 꿈은 아직도 추위에 굶주리며 고통 받는 북한의 가족과 주민들을 위해 따스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거예요.

 


아이오와 주립대를 선택한 이유와 앞으로 대학 생활에 기대되는 점은


광성: 첫 번째로 장학금을 제일 많이 받아서 갈 수 있고, 두 번째로 아이오와 주립대는 건축학과가 괜찮은 학교고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워크숍에도 참가해서 한국인 인테리어 디자인 교수님과 대화도 나누고, 미국 시골에 있는 학교인데도 국제 학생들한테 관심 많은 것도 신기했어요. 


기대되는 부분은 저는 내성적이긴 한데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요. 새로운 자극을 좋아하고 그럴 때 아드레날린이 뿜뿜하고 그런 부분이 제일 기대됩니다. 새로운 캠퍼스고 힘든 부분도 있겠죠. 약간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하면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만 탈북할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여기 한국에서는 좋은 것을 많이 보고 가니까 이제는 뭔가를 두고 가는 게 많은 느낌이에요. 친구들도 많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 제 몸을 맡기는 거라서 그게 좀 걱정되긴 하지만 즐길 준비는 됐습니다. 

 

 


 

북한에서 온 친구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할 때 한 단계 더 성장할 것."


다른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부분


광성: 일단은 다음학교 학생들은 화평쌤(다음학교 수학교사)도 말씀하시지만 특별한 거 같아요. 북한 학생들은 특별한 환경에서 온 거니까 특별하고,. 제3국 출신 학생들도 새로운 땅에 낯선 언어랑 힘들었을 거 같은데 대단하고, 한국 학생들도 대단한 게 다른 진로를 선택해서 온 거니까 이 경험 자체가 소중하고 미래에 도움 되는 건데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친구들이 특별한 거 같아요.

 

특히 북한에서 온 친구들한테 한 마디 하자면,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나가서 북한에서 왔다고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차별하고 수군거릴 수 있지만, 차별하고 수군대는 사람들은 멀리하는 게 맞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냥 과거 중 하나잖아요. 고향이 어디예요. 강원도요 부산이요 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 부담감이나 숨기려고 하고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할 때 한 단계 성장하는 거 같아요. 

 

끝으로 아들 광성이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나희: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단 말이지.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안에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오를 수 있는 목표 말고 오를 수 없는 목표에다 목표를 두면 좋겠다. 나도 모르는 잠재력이 내 안에서 나와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첫 번째는 목표를 높이 걸어라. 작년 사례를 보면 그 전보다 유학을 집중적으로 준비한 일 년 동안에 이뤄낸 일들이 더 많은 걸 보면,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동기부여로 네 안에 있는 잠재력을 너 스스로 꺼내는 거. 두 번째는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고, 세 번째는 네 옆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들어라.



인터뷰, 글: 김고운

사진: 주안루

*미국 대학 합격썰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다음학교 수학교사이자 만능엔터테이너 김화평선생님과 정광성군의 인터뷰 내용도 공유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번외자료2
졸업식 날 아름다운 우정이 빛났던 설유진 학생의 송사 내용도 담았습니다.


졸업식 송사

 

지금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광성은 아이오와로 유학을 떠나 새로운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지금 그에게 많은 새로운 기회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학교에 한 기여와 기쁨으로 인해 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의 매력, 지성, 지혜 그리고 판단력과 같은 많은 훌륭한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와 같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그에 대해 존경하는 점입니다.

 

물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그에게 뭔가 대단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제 가장 위대한 친구들 중 한 명과 작별을 고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먼저, 제가 그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제가 그에게 제 인생을 빚졌다고 믿는다는 것을 말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큰 책임감과 공감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피곤하다고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사람들이 비공개로 여러분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을 진정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더 이상 삶에 열정이 없을 때 그들은 그들을 위해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그들을 그들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때때로 그것은 엄마, 아빠, 친구, 심지어 애완동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형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구원받았습니다. 가끔은 제가 미숙하고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저를 참아내며 무엇보다 인내가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를 통해 저는 우리의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광성이는 또한 저에게 매우 공감을 해주었고 심지어 마음속으로도 저를 위해 정직한 길로 가는 방법을 생각해 주었습니다. 필요할 때 그는 또한 나서서 그가 지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재미있게도, 사람들을 올려다보는 것을 거의 즐기지 않는 저는 그와 정반대의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내가 듣고 싶지 않지만 행동해야 하는 것들을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그가 겨울방학 동안이나 우리가 미국에 개별적으로 여행하는 동안 저에게 전화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고 저는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가 내 외로움의 흐름을 끊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광성이도 내가 그의 예를 우러러본다는 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안팎으로 결점이 있지만 제가 확신하는 것은 그 자신의 발전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가난한 마을에서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기까지의 그의 위대한 여정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날 우리는 ‘심야의 부엌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가 우리의 게으름에 대해 언급했을 때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날부터 나는 그가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를 달성하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결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그에 대한 나의 동경은 대단했습니다. 당신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공유했기 때문에 당신이 떠난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이 지난 4년 동안 우리가 즐겼던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내 영혼 속에서 영원히 불멸하고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때 나는 정말 진심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가 당신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진정한 감탄입니다. 당신은 나의 형제입니다. 나는 우리가 대화할 때 내 의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우리가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집을 그릴 때 쉬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세요. 모든 추억에 감사드리며, 다음에 뵙기를 바랍니다.



- 설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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